Walt Whitman and the Culture of American Celebrity

원문

Walt Whitman and the Culture of American Celebrity
David Haven Blake

신청받은 기사

2015년 수능 영어 34번 문제 지문


Long before Walt Whitman wrote Leaves of Grass, poets had addressed themselves to fame. Horace, Petrarch, Shakespeare, Milton, and Keats all hoped that poetic greatness would grant them a kind of earthly immortality. Whitman held a similar faith that for centuries the world would value his poems. But to this ancient desire to live forever on the page, he added a new sense of fame. Readers would not simply attend to the poet’s work; they would be attracted to the greatness of his personality. They would see in his poems a vibrant cultural performance, an individual springing from the book with tremendous charisma and appeal. Out of the political rallies and electoral parades that marked Jacksonian America, Whitman defined poetic fame in relation to the crowd. Other poets might look for their inspiration from the goddess of poetry. Whitman’s poet sought (blank). In the instability of American democracy, fame would be dependent on celebrity, on the degree to which the people rejoiced in the poet and his work.

  1. a refuge from public attention
  2. poetic purity out of political chaos
  3. immortality in literature itself
  4. the approval of his contemporaries
  5. fame with political celebrities
  • Other poets might look for their inspiration from the goddess of poetry. Whitman’s poet sought (blank).
  • Others might court the muses on Mt. Parnassus or imagine themselves in the laureates’ sacred grove. Whitman’s poet sought the approval of his contemporaries.
  • 다른 이들은 파르나수스 산에서 뮤즈 신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월계수 성림에 들어간 본인을 상상했을 것이다. 휘트먼의 시인은 동시대인의 인정을 받고자 했다.

원문이 굉장히 구차하고 구색적입니다. 예를 들면 미대륙에서는 “court”라는 단어를 저런 용도로 잘 사용하지 않아요. “Court” 라는 단어가 생긴 이유는 순전히 궁이나 저택에서 하는 파티에 여성의 손을 잡고 파트너로 출석하던 것을 낭만적인 관계 혹은 환심을 사려는 행위로 뜻이 바뀐겁니다. 당연히 1700년대에 공화정으로 시작한 미국에서 쓸 법한 단어가 아닙니다.


원래는 시험 문제라 재번역 신청을 거절할 생각이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졌고, 오프라인 상에서도 설명해줄 수 있냐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먼저 오류 논란을 두고 제 의견을 피력하자면, 원작자의 답장을 오역하면서까지 주장을 과시해야 했나 싶습니다. 답장 원문에는 상반되는 두 주제를 한 문단에서 같이 발달시켰는데 출제된 문제에는 다른 시인들이 찾던 불멸성에 대한 주제가 희석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에는 학생들이 은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영원함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 것 같다고 적고 있습니다. 말인즉슨, 원작자는 바뀐 문구가 문단이 목적으로 하던 두 주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질이 떨어진다고 말한 것에 비해, 한국어 번역에서는 해당 문단에서 ‘영원함’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미묘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각한 오역입니다.

이 의심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더 있습니다. 수능 지문에서는 해당 문구를 단순히 ‘시의 여신에게서 영감을 찾았지만’ 정도로 바꾸었습니다. 그렇지만 문단은 여전히 명작을 남긴 고전적 시인들로 시작합니다. 시의 여신이라는 표현으로 확실히 고전적 사상을 필두로 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는 있지만, 원작자가 노렸던 만큼의 효과가 아닐겁니다. 원문에서는 파르나수스, 성림 같은 서양문학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과장되고 가식떠는 문장을 사용합니다. 미국에 사는 독자 입장에서는 유럽 귀족이나 떠들 이야기를 내가 왜 들어야 하나 싶을겁니다. 그 와중에 휘트먼은 달랐다, 거기서 독자가 받을 비교 효과가 희석 되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약점입니다. 하지만 비교 효과를 상실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인터넷에서 제기된 원어민도 틀리는 영어 문제라는 주장은 정말 의미없는 것입니다. 재번역 코멘터리에도 적었듯, 원문이 애시당초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사실관계만 두고 보자면 “Whitman’s poet”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법에 맞지 않는데다, 원작자가 원하는 표현을 어법에 맞게 적자면 ideal poet 혹은 inner-poet 이라고 적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작자가 아무리 훌륭한 문단을 작성했다 하더라도 어법을 따르자면 문제가 되는 두 문장이 상반되는 주장을 담고 있으므로 접속사를 사용했어야 합니다. 구태여 변호하자면, 관련 영상에서 나오는 원어민은 영문학의 언어를 모른다 할 수 있습니다.

본 문제의 가장 큰 실수는 다름이 아니라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영어교육이 영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를 무리하게 문화와 격리해 가르치고 시험하려 든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갑자기 영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것은 불가능하며, 가능하다 하더라도 한국식 영어를 가르칠 뿐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휘트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애당초 신대륙의 감성은 동양인으로써는 와닿지 않는 부분입니다. 해당 지문은 결국 휘트먼이 구대륙의 가식적인 시인관에서 벗어나 영세적이고 더 현실적인 감각을 추구했다는 것인데, 동양에서는 이를 시류에 영합하려는 속물같은 시인으로 볼 것입니다. 심지어 원작자가 든 시인들이 죄다 미국예외주의에 부합하는 인물들입니다. 미국은 고대 로마(호라티우스)도 아니고, 르네상스(페트라르카)도 아니고, 영국(셰익스피어, 밀턴, 키츠)도 아닌 미국에 뿌리를 두는 특별한 나라이며 미국의 시인 또한 상아탑에서 고고한 체나 하고 있지 않을 것 이라는 이 내용은, 구대륙에 속하는 한국인으로써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이 문제는 휘트먼과 휘트먼의 사상을 알고 있더라면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만일 이 문제가 문학을 염두에 둔 새로운 수능의 영어 예제 문제로 나왔더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저만 하더라도 원문이 되는 책은 몇번이나 읽어봤으니까요. 저 문단 하나로 당대의 분위기와 시인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흔히 텍스트로 씁니다. 거기다 사용하는 단어도 미국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 뿐입니다. “Turbulence”, “rally” 같은 단어들은 미국 영화만 봐도 쉽게 볼 수 있을 겁니다. “Turbulence”는 기내에서 난기류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방송을 할 때 나오고, “rally”는 집회를 뜻하는 단어로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만을 검증하는 시험에서는 쓸 수 없습니다. 각각 뜻이 난기류, 집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격동, 경주 같은 한국어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뜻도 있거든요. 이러다보니 이 수능 문제가 나쁜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미 누군가 말했다시피, 원어민도 틀렸거든요.

위 포스트는 RE-Translation에 따라 번역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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